▲ 자연원형이 완전히 파괴되고 야자수가 식재된 인공섬으로 전락한 대섬. ⓒ헤드라인제주 |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위치한 2만여 ㎡ 규모의 '대섬'은 수려한 해안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현행 제주특별법상 개발이 엄격히 금지된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서울 소재 H대학 재단소유에서 이 땅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개발자체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자수 올레길'로 변했다. 대섬의 자연원형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인공섬이 들어선 것과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확인 결과,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간 조경업체 등이 대섬 2만1550㎡ 부지를 사설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마구잡이로 파괴해 평탄화 작업을 하고, 야자수를 식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가 끝난 후인 지난해 11월 뒤늦게 수사에 착수한 제주자치경찰단은 지난 19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조경업체 대표 A씨(66)와, H대학 소유의 토지를 관리하고 있는 자산관리단 제주사무소장 B씨(61)를 제주특별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자치경찰에 따르면, A씨는 B씨와 공모해 이곳이 절대보전지역인 것을 알면서도 사설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훼손해 불법 개발한 혐의로 받고 있다.
자치경찰은 A씨와 H재단의 공모 여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A씨의 조경업체 사무실과 자산관리단 제주사무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대섬(죽도) 개발계획안' 등 회사 내부서류를 공유한 정황과 상호간 금융거래내역, 개발행위와 관련한 통화 및 문자 내역 등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H재단은 대섬 훼손 이후에야 관련 보고를 받았고, 불법개발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이번 자치경찰의 사법처리 대상에 H재단은 빠져있다.
그러나 실제 땅 소유주도 아닌 관리인과 조경업체가 사설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섬 전체를 파괴해 야자수를 식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이번 불법개발 행위 배경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 공무원 '방조' 의혹...8개월간, 왜 모른척 했나
이 사건과 관련해, 또다른 의문은 불법행위에 대한 공무원들의 묵인 내지 방조 의혹이다.
대섬 일대에 불법 공사가 자행돼 '야자수 올레길'이 완성되는 동안 제주시 당국이나 제주도정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시는 절대보전지역 파괴 사실을 인지하고 자치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적극적 대응을 한 것처럼 밝히고 있으나, 수사의뢰 시점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불법 개발사실이 드러난 지난해 11월말이었다.
이는 공사가 끝난지 한달이 지난 시점으로, 언론에서 11월 초순부터 대섬 불법 개발에 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늦깎이' 수사의뢰인 셈이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8개월간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대섬에서 마구잡이로 불법적 공사가 행해졌음에도, 절대보전지역 관리 책임이 있는 관계부서나 조천읍사무소에서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일주도로와 연접한 대섬과 조천읍사무소의 거리는 불과 1.1km로, 차를 통해서는 2분 거리에 있다. 일주도로에서도 대섬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점, 조천읍사무소 공무원들이 출퇴근을 할 때 대부분 이곳을 지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묵인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한 공무원은 언론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자, "대섬은 개인소유로, 자기 소유의 땅을 개발하는 데 대해 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엉뚱한 답변을 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H대학 소유이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제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이다.
◆ 슬그머니 내려진 도청 SNS '야자수 올레길' 이미지
대섬 불법개발과 관련해 제주도청의 행보도 의구심을 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도청 홈페이지 소셜미디어(SNS) 코너에 대섬을 소개하면서 '야자수 올레길' 사진을 버젓이 올리고 "현재 야자수 올레길 주변은 옛 연못과 토담집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 사진과 글은 대섬 불법개발 논란이 일자 슬그머니 내려졌다. 제주도당국이 대섬 '야자수 올레길'과 관련해 홍보협력을 진행했던 것 아니냐는 연관성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 제주특별자치도가 지난해 말 SNS홍보용으로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뒤늦게 삭제한 자료. ⓒ헤드라인제주 |
◆ 조경업자만 처벌로 끝?...멀뚱멀뚱 청렴감찰단, 왜 만들었나
상황이 이런데도, 제주특별자치도는 '수사의뢰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무원들의 직무태만이나 묵인.방조 의혹에 대해 아무런 사실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도 청렴혁신감찰단 관계자는 "대섬 불법개발에 대해서는 자치경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감찰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래 수사 진행 중인 사안은 (수사종결되기 전에는) 감찰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치경찰 수사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조경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공무원들의 행정대응 적절성 여부는 사법처리 부분과는 별개임에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감찰 한번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드러나 오히려 의구심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제주시 감찰부서 관계자도 절대보전지역 불법행위에 대한 관계부서 대응에 대해서는 감찰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대섬 전체가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로 파괴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공직 내부에서는 책임지는 이 한명 없이, 조경업자 처벌로 마무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대섬 불법개발은 사법당국의 수사와 별개로, 행정당국이 제대로 대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묵인을 한 것인지, 절대보전지역 관리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부분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며 "그럼에도 해당 부서나 기관 '경고' 조치 하나 없이 넘어가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민선 7기 제주도정 출범 후 감찰부서가 도지사 직속으로 확대 편성됐으나 그동안 공직내부 직무 소홀 부분 등에 대해 단 한번 단호한 감찰이 이뤄진 사례가 없아 감찰단의 무용론도 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자연원형이 완전히 파괴되고 야자수가 식재된 인공섬으로 전락한 대섬. ⓒ헤드라인제주 |
▲ 자연원형이 완전히 파괴되고 야자수가 식재된 인공섬으로 전락한 대섬. ⓒ헤드라인제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