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뉴스를 본다. 어제와 판박이다. 뉴스는 언제나 소재만 바뀔 뿐 내용은 거의 같다. 대한민국은 불신민국. 갈등민국. 자살민국. 사이코페스 천국 등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하고 과도한 경쟁 속에서 탈진하여 욱하는 불만이 표현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 모두가 무력하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하다.
또한 요즘 뉴스들의 사회적 환경은 너무 살벌하다 못해 참담하고 삭막한 소식들뿐이다. 뉴스는 이렇게 끝나간다. 내일은 또 어떤 황폐한 뉴스들로 채워질지 두렵지만, 아직 뉴스는 끝나지 않았다. 희망이 보인다.
뉴스 말미에는 휴가를 반납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섬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의료봉사와 재능기부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빛이라곤 찾을 수 없는 황무지에서 희망이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절망과 희망, 위기와 기회의 경계에 서 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으면 희망이 있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갖지 않으려 하는데 문제가 있다. 희망을 가지려면 무력감에서 벗어나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식과 행동의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약육강식의 경쟁논리만이 적자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상황이다. 장기화되는 경제적 불황, 뿌리 깊은 정치적 갈등, 거센 이기적 욕구의 분출 등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없다. 위기를 직시하고 절망을 해야 재생의 희망을 가질 터인데, 위기의식이 없다. 눈앞의 이익에 눈 어두워 승자독식 경쟁게임에 빠져 미래의 희망을 차버리고 있다. 과연 인간과 동물의 근원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 아닐까?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인간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봄으로써 세상에 나쁜 영향을 주는 많은 것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세상에는 때로 추악한 일도 일어나고, 참담한 위기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희망’은 끝까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어 아무리 큰 어려움을 겪더라도 끝까지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람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만이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사람을 믿는 것이다. 사람을 믿어야 양보가 가능하다.
희망실현의 조건은 희망의 본질인 사람에 대한 신뢰이다. 오늘날 사회위기도 경제위기도 모두 사람에 대한 신뢰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승자독식의 경쟁이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절망적인 생존투쟁의 환경에서 벗어난 희망의 세계를 열려면 경쟁 능력보다 함께하는 사회 양보와 배려의 능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누가 양보해야 하는가? 당연히 중앙정부나 지자체. 정치권이 먼저 변해야한다. 강자의 양보가 없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사회에는 절대로 희망이 없다. 약자도 약자권력을 버려야 한다.
양보는 상호적인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양보능력을 배양한다. 사람을 믿어라! 사람은 부처이고 하나님의 형상이다. 모든 보편적 종교는 서로 믿을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신뢰할 때 양보가 가능하고 양보할 때 함께하는 상생의 길이 열린다. 오늘도 나는 함께하는 이들이 사람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고태언 제주특별자치도자원봉사센터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