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인 양윤모씨(54).
지난 6일 오전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공사를 저지하다 또다시 경찰에 구속됐다.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석방된지 3개월만에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 그의 구속 소식에 강정마을 주민들과 지인들은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그가 보여준 '신념'과 마지막까지 잃지 않았던 당당함은 주위를 숙연케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6일 아침 해군기지 공사현장에서 테트라포트(삼발이) 제작을 위한 거푸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그 현장을 목격한 양씨와 주민들은 이에 격렬히 항의했는데, 양씨는 크레인 차 밑으로 들어가 끝까지 항거했다. 경찰들이 일제히 그의 다리를 잡고 끌어당겨도 그는 완강히 맞섰다. 바지가 벗겨져도 그의 고집은 누구도 꺽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한 사복경찰이 그의 배 부위에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결국 그는 물리적 제압에 의해 경찰에 연행됐다.
연행된 후 이번에는 업무방해 혐의와 폭력혐의가 적용됐다.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지고 영장이 발부되는 그 순간까지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해군기지 공사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해(害)하는 해군기지 공사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이 구속사유로 적시한 혐의사실에 대해서도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명분이 옳다고 해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정당할 수 없으므로,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하지만 구속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평화운동은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비록 몸은 구속될지라도 자신의 신념까지 구속할 수는 없음을 항변한 것이다.
경찰에 연행되던 순간부터 9일 현재까지 그는 단식투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상황이 그에게 있어 상당히 답답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를 면회한 지인은 자신이 행한 모든 상황은 인정하겠다고 하면서도, 연행과정 중 자신에게 행해진 경찰의 '지능적 폭력'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경찰이 해군의 편에 서서 공권력을 남용한데 따른 것이다.
서울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자 아예 제주로 내려와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강정마을의 중덕 해안가에 천막을 쳐 놓고 혼자 생활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래서 강정 주민들은 그를 '한 식구'처럼 생각하고 있다.
경찰에 연행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3월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해군기지 예정지를 방문할 때 그는 김 장관이 타고 있는 승용차를 가로막았다.
이 일과 강정마을 해군기지사업 부지 인근에 세워진 해군의 홍보입간판을 훼손한 일로 인해 그는 4월 경찰에 체포돼 19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 때에도 그는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정당한데 왜 벌금을 내야 하느냐며 벌금납부를 거부했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벌금을 받고 싶으면 차라리 잡아가서 노역을 살게 하라는 의지까지 보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12월27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 앞에서 해군기지 공사자재 반입을 저지하며 저항하던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34명과 함께 그는 또다시 경찰에 연행됐다.
함께 연행된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으나 그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은 일로 인해 구속수감됐다. 혹독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해 겨울, 그는 차라리 감방생활을 택했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그의 고집은 쉽게 꺽이지 않았다. 벌금 190만원을 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눈물로 호소하며 벌금을 납부할 것을 권유한 강정마을 주민들의 호소를 받아들이면서, 올해 1월 중순께 풀려날 수 있었다.
출소 후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강정마을의 중덕 해안가 천막을 찾았다.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도 그의 기나긴 천막생활은 계속됐다.
8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는 지금까지 비슷한 행위를 반복해왔고, 현재 사법계류 중인 사안이 있음에 따라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즉,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공사를 저지하는 등의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록 그는 구속이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크레인 차량 밑으로 들어가 처절한 몸부림을 한 것은 해군기지 공사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다는 선택이었다는 그의 말이 현실적 한계를 실감케 한다.
레미콘과 덤프트럭 등 거대한 장비들 앞에서, 공권력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항변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멀찌감치 떨어져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적 한계.
그것이 크레인 밑에서 몸부림을 하도록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헤드라인제주>
[동영상] 양윤모씨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연행 |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