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대구중학생 자살 사건. 그리고 최근 제주도내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피라미드식 금품 상납 사건.
학교폭력이 최근 제주는 물론, 전국적인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학생간 문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로 이를 바라보고 접근,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내 학교폭력 관련 전문가들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12일 오후 2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소회의실에서 이석문 교육의원.김용범 의원.강창수 의원의 주최로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 포럼'이 열렸다.
학교폭력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포럼. <헤드라인제주> |
포럼을 주최한 이석문 의원. <헤드라인제주> |
포럼은 특별한 형식 없이 참석한 전문가들이 학교폭력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나름의 대책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석문 의원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유서를 보면서 아이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며 "제주도 역시 드러나지 않아을 뿐 이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포럼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포럼에서는 제주도교육청 창의.인재교육과 김순관 장학관, 제주지방경찰청 김영옥 여성청소년계장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 설명에 이어 학교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원들이 각자의 입장을 피력했다.
일선 학교 교원들의 의견은 현재 학교현장에서 추락한 교권으로 인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어,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소속 김관형 교사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교사에서부터 시작된다"며 "따라서 교사가 적극적으로 이런 일에 개입해서 초기 예방활동과 사후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의 선량한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교권이 서는 것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교권이 바로서야 학교폭력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소속 홍창의 교사는 "학교폭력은 편 가르기나 언어 폭력 등 경미한데서 시작되지만 기성세대의 교사들은 성장의 한 과정으로 간과해 버린다"며 "또 보복이나 왕따가 두려워 피해사실을 주변인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교사가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홍 교사는 "특히 애들은 뭔가 물어봐도 절대로 입을 여는 법이 없다"며 "학생과 교사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주 교사가 학교폭력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학교폭력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포럼. <헤드라인제주> |
초등학교 교사들의 토로도 이어졌다. 동홍초등학교의 송은주 교사는 "흔히 학교폭력 업무 담당 교사는 죽어나겠구나라는 말을 한다"며 "일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책임이 교사들에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현장에서는 학력향상과 생활지도 두 가지를 함께 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생활지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마련되지 않아 학생들과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 "Wee센터에 학생을 맡기려 하면 학부모의 반발로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며 "게다가 학생상담자원봉사자가 학교에 와서 상담을 하는데 이마저도 기간이 짧아 1년 내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라초의 고충희 교사는 "경력이 낮은 교사나 방금 전입온 교사들이 생활지도 업무를 맡을 때가 있다"며 "그런데 이렇게 되면 상담도 안되고 본인만 스트레를 받게 돼 일선 교사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장의 책무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언하고 있는 홍창의 교사. <헤드라인제주> |
표선중 강상진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학교폭력 발생 빈도가 비교적 많은 중학교의 경우 교사들의 고충이 더욱 깊었다. 제주서중 강창효 교사는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은 교사에게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자동적으로 입을 열게끔 교사와 가해학생간 간극을 좁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중.고교 생활지도 담당 교사간 가해학생이 될 소지가 있는 학생에 대한 정보 공유나 교환도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학급배치나 지속적인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선중 강상진 교사도 "애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선후배간 이어진 연결고리를 어떤 식으로든 막아서 각자 나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대책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고등학교 교사를 대표해 자리한 중앙고 김원건 교사는 "먼저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열정만큼은 대단하지만, 뭔가 잘못하고 있지 않은지, 전문성이 없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하지만 학생들이 교사의 지도마저 불응하는 관계 속에서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 인권만을 강조하지 말고, 교사 인권도 보장하고 권위를 내세우면서 학생지도에 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이 학교폭력 예방활동에 있어 겪는 고충, 그리고 해당 업무를 피하려는 상황을 접한 서귀시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나름의 묘안을 제시했다.
김장영 교수학습지원과장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5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해 왔지만, 실제 학교현장에의 교사들은 학습지도도 해야하고 업무처리도 해야하며 상담까지 해야하는 등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학교 교사들에게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담당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 등을 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전문가 포럼는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개진되는 수준에 그쳐, 이렇다할 학교폭력 근절 대책 도출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편 이석문 의원은 이러한 점을 감안, 앞으로 법률 전문가, 정신과 상담 전문가 등과 지속적으로 포럼을 가져나갈 계획이다.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