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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만의 귀향 4.3생존자 3人...70년 전 기억 '눈물'

홍창빈 기자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승인 2018.03.30 16:19:00     

제주4.3증언 본풀이마당, '70년만에 말햄수다'
"집 불에타고...아버지 공회당에서 총살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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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열린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의 아픈 상처는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제주4·3 회오리 속에 제주 공동체는 파괴됐다. 공동체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이 타의에 의해 해체됐다. 살아남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제주를 떠났다. 어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낯선 땅이 그들의 고향이 됐다.

70년만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일본으로, 경기도로, 전라도로 떠났던 이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70년 동안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왜 떠나야 했는지를, 왜 평생 '성'을 바꾸고 살아야 했는지를.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 소장 허영선)는 30일 오후 2시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일곱 번째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을 열었다.

김은희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이 진행한 이날 증언본풀이마당에는 '70년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한 올해 행사에서는 4.3당시 제주를 떠났던 4.3생존자 3명이 70년만에 돌아와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했다.

◆ 송복희 할머니의 기억..."정말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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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열린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16살때 4.3을 겪고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가 살고 있는 송복희 할머니(87. 일본 오사카 거주).

송 할머니는 4.3당시 서귀포에 살았다. 당시 토벌대가 여관에 주둔하고, 2연대 군인들이 주둔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2연대가 산에서 잡아온 무장대원 여러 명을 참수해 머리를 집 앞 전봇대에 걸어놓은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이 끔찍했다고 했다.

"목 달아 맨 것이...아이고 남자는 그 자락 안하는데 여잔 머리가 귀신 닮읍디다. 목을 잘라서 달아매난 여잔 머리가 길지 안합니까. 그 여자는 송00의 애인이라고 했습니다. 머리 매단 걸 보니 정말 무서웠스니다."

친척 중에는 서귀포에서 유명한 면장이 정방폭포 부근 논밭에서 총살당했고, 그 면장의 부인과 작은 아버지, 송구장이라 불리던 마을 대표는 예비검속되어 행방불명 되었다고 했다.

송 할머니는 20살 때 언니와 동생이 있는 일본으로 밀항했다. 경찰의 허가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부산을 거쳐 일본 오사카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양농옥(87.경기도 거주)씨는 제주시 정실마을 출신이다. 제주4.3 당시 농민위원장을 했던 아버지는 9연대에 끌려가 오라리 공회당에서 총살됐다. 도두리로 피난 갔던 양씨는 도두초등학교 주변에서 9명이 총살되는 모습도 지켜봤다. 도두리로 시집간 언니의 시집식구들은 몰살됐다. 남편도 4·3 후유장애를 앓았다. 1970년 고향을 떠나 경기도 성남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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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열린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 이삼문 할아버지의 기억..."9살때 나 혼자만 살아남았어"

제주시 노형 함박이굴 출신의 이삼문 할아버지(77.전남 목포 거주).

제주4.3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 형 둘과 누나, 할머니를 잃고 고아가 됐다. 당시 9살이던 그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거리를 헤매다가 군인을 만나 목포로 갔다. 그러나 그와도 헤어지고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 혼자 버려졌다.

"제가 살던 곳은 함배기(노형동 함박이굴)라고 불리던 작은 마을이었어요. 어머니, 아버지, 큰형, 작은형, 누나, 할머니와 함께 이렇게 일곱 식구가 살았죠. 마당이 넓었고 감귤나무가 있었어요.

4.3사건이 터지자 낮에는 군인 경찰들이 마을에 들어오고 밤이면 좌익머리 쓴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왔어요. -중략-

경찰들이 만들어 놓은 천막촌에서 살때였어요. 경찰이 좌익머리 쓴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할 때, 어머니가 경찰들이 하는 말을 잘 못 듣고 나갔다가 총살당했어요. 경찰이 가족 중에 산에 올라간 사람을 나오라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가족 중에 산 사람한테 죽은 사람을 나오라는 줄 알고 손을 들고 나갔던 거예요. 멀리서 어머니가 총살당하는 걸 보고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된 그는 목포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6.25 전쟁이 터지자 목포 시내를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걷고 걷다가 들어간 집안의 일꾼이 됐다고 했다. 후에 그곳 주인이 양자로 올리면서 성씨를 '박'씨로 해 평생 살았고, 1941년생이던 출생연도는 1953년으로 12년이나 늦게 호적에 신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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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열린 제주4.3 증언본풀이 마당. ⓒ헤드라인제주

◆ 양농옥 할머니의 기억..."공회당에서 아버지 쏴 죽였다고"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양농옥 할머니(87)는 제주시 정실마을 출신이다.

4·3 당시 농민위원장을 했던 아버지는 9연대에 끌려가 오라리 공회당에서 총살됐다고 했다. 도두리로 피난 갔던 양씨는 도두초등학교 주변에서 9명이 총살되는 모습도 지켜봤다.

"10월 그믐날, 할아버지 제사 해먹고 나니 다음날 11월1일에 도두국민학교로 다 나오라고 해요. 몽둥이 들고 쫗아내서 도두리 사람들이 다 나왔어. 아버지는 두 동생 양손에 잡고 앞에 걸어가고 나는 뒤를 따라가는데 그 때 아버지가 뒤돌아보며 '항아리 밑에 돌을 들어보면 뭐 있다'고 하시는 거야. 학교 운동장에 모여있는데 지프차가 와어요. 세어봣지, 세 사람씩 세줄로 아홉이더라고, 눈 가린 채. 그 사람들을 학교 앞 한길 건너 보리밭으로 데리고 가더니 담배 한대씩 탁탁 물려주고 바로 빵빵 하더니 퍽퍽 쓰러지더라고. 그다음 아버지를 지프차에 태워 가는거야. 나는 같이 간다고 매달렸지. 기다려도 아버지가 안와. 5일째 되는날 아버지가 오라리로 갔다는 말을 들었어. '오라리로 간 사람들 다 죽었져'라는 말이 들리는 거야. 오라리공회당에서 쏴 죽였다고."

도두리로 시집간 언니의 시집식구들은 몰살됐다. 양 할머니는 고아가 됐다. 나중에 결혼한 남편도 4·3 후유장애를 앓았다고 했다.

"숙모님이 소개해서 남편을 만났어. 결혼해보니 남편은 4.3때 경찰서에서 맞은 맷독으로 속이 곯은 사람인 거야. 형 둘은 목포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되고, 시어머니는 열안지 오름에서 총맞아 죽고, 아버지도 죽으니 그는 혼자 남은 거라."

1970년 고향을 떠나 경기도 성남에 정착했다.

이날 증언본풀이 마당 개막 공연에서는 일본 오사카 출신인 재일동포 3세 안성민씨가 4·3을 판소리로 만든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안씨는 2013년 제40회 남원춘향국악대전 명창부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서울과 오사카에서 수궁가를 완창 했다. 고수는 같은 재일동포 3세인 조륜자씨가 맡았다. 조씨는 2008년부터 문화패 마당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증언본풀이마당은 제주4.3체험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당으로, 마음속에 쌓여온 기억을 풀어냄으로써 자기를 치유하는 '4.3트라우마의 치유마당'이며, 제주4.3의 진실을 후세대들에게 알리기 위해 2002년부터 열리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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