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쾅” 하자 마루에서 웃음이 한바탕이다.
내 방에서 조용히 불을 끄고 잠을 청하던 나는 무슨 일인가 거실로 나갔더니 아버지, 어머니, 조카들이 일제히 소파에 앉아 ‘하하 히히 호호’웃느라 정신이 없다. 얼마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기에 내가 나와 있는 줄도 모를까.
TV에서는 반가운 노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렸을 적 들었던 노래라 반가움에 조카들이 앉아 있는 틈을 비집고 껴 앉아 같이 TV를 보았다 인기 연예인 5명 정도가 출연해서 각기 옛날 우리의 형, 누나들이 입었던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 이야기도 하고 예전 음악책에서 볼 수 있었던 가곡이나 동요들을 한 소절씩 돌림노래로 2절까지 완벽하게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열 번의 기회를 주고 열반 안에 성공하면 장학금을 출연자들의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보내는 참 괜찮은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5명 중 한 사람이 리듬이나 가사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여지없이 높은 곳에 걸려 있던 쟁반이 5명 모두의 머리를 강타하는 것이다. 쟁반이 떨어질 때의 느낌이 어떨까? 쟁반이 떨어져 출연자의 머리를 때리는 순간 보던 나도 오싹해짐을 느낀다.
맞을 때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재미있게 한다.
여기서 주로 부르는 노래들 대부분은 학창시절뿐만 아니라 평소 우리 귀에 많이 익숙한 동요나 가곡들도 있다. 오랜만에 듣는 곡이라 나도 같이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출연자들을 보면 그 노래를 아는 세대가 한 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요즘 세대인지라 우리 세대에 불렀던 가곡이나 동요가 나오면 나는 학창시절 자주 불렀던 노래라 곧잘 따라 부르는데 출연자들은 한 번 들려준 것으로 자기 소절을 기억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음악시간이 생각난다. 내게 있어 음악시간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약간의 언어장애도 있어 실기 시험을 볼때는 독창으로 불러야 했다. 그런데 나는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노래가 자주 끊기고, 음이 일정치 못하면 장애를 이해 못하시는 선생님은 질책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바다가 되고 난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내 장애를 아는 친구들은 나를 위로하며 다독거렸지만...
어쨌든 학창시절 음악시간은 별 좋은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그 때 그런 가곡이나 동요들을 듣는 것은 참 좋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술래잡기나 숨바꼭질 등 각종 놀이를 하다가 해가 떨어져 어두운 밤이 되면 동네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달이 비추는 동네 한 모퉁이에 모여 앉아 동요를 한 사람이 선창하면 아는 사람은 일제히 따라 부르곤 했었다. 그렇게 부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나도 잘 부르진 못했지만 형, 누나들과 함께 목청껏 따라 부르곤 했었다. 당시는 우리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유행가나 노래들이 많지 않았기에 가곡, 동요, 당시 인기 있는 만화주제가가 전부였다.
어느덧 출연자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았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거의 성공하는 찰나 한 출연자가 가사 한 소절을 틀리는 바람에 여지없이 쟁반이 머리로 꽝! 이제 마지막 기회다.
출연자들은 물론 보는 시청자들도 가슴을 졸여가면서 듣는다. 왠지 내 가슴도 콩닥거린다.
드디어 열 번의 도전 만에 성공의 팡파르가 울렸다. 옆에서 숨죽이고 보고 있던 조카들이 기뻐서 난리다.
요즘에는 노래방 문화가 널리 확산되면서 노래 못하는 사람 없고, 모든 사람들이 가수가 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나도 가끔씩 아는 사람들과 같이 가서 노래를 부르면 여러 번 만점이 나와서 술값을 더 낸 적도 있다.
내일은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노래방에 가서 예전에 부르던 동요나 가곡을 목이 터지도록 부르고 싶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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