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소영아!
내가 수필가로 등단하던 날 축하를 해주던 네가 “오빠 왜 내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거야?”라고 말을 했었지. 그냥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와 같이 보냈던 어린시절 추억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너와 내가 나이차이가 네 살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난 철없는 어린애 같았는데 네가 더 어른스러웠었지. 서로 뒤바꿔졌으면 할 정도로 말이야.
넌 어렸을 때부터 총명한 아이였어. 너는 항상 모든 면에서 너의 또래들보다 조금씩 앞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었지.
기억나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였던가 산수 숙제를 하는데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해서 엄마에게 혼날 때 네가 옆에서 엄마 몰래 내 숙제를 도와주던 일.
난 그때 네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너를 미워했었어.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는 내 장애를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 소영이 네가 오빠를 위하고 있음을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단다.
우리가 연립주택에 살 때였을 거야. 주인댁에는 네 또래의 딸이 두 명 이였는데 주인집 큰딸과 네가 친구여서 재미있게 놀기도 하지만 자주 말다툼 했었지? 그러면 친구는 여동생과 합세해서 너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이 오빠는 어떻게 너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너는 혼자라도 둘에 맞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할말을 다해버렸지.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가 자기 딸들을 데리고 들어가 혼을 냈었잖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넌 이 오빠를 많이 챙겨주었지.
또한 어른들이 “이 다음에 커서 뭐 할 꺼야?” 하고 물으면 “간호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오빠의 다리를 고쳐줄 꺼야”라고 했었잖아.
결국 지금은 간호사가 아닌 동물병원 의사가 돼 있지만 오빠는 동생인 네가 참 자랑스럽단다.
또 어렸을 때 내가 워낙 육식을 좋아해서 저녁 식탁에 육고기 반찬이 올라오면 항상 살코기 쪽은 내 쪽으로 밀어주며 “오빠는 살코기 먹어, 난 비계가 맛있으니까”라며 천친 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너 역시 살코기가 먹고 싶었겠지만 오빠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걸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참 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
비틀거리는 걸음 때문에 어릴 때에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하고 너와 함께 집에서 지내야만 했었지. 너는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나 때문에 항상 희생을 하면서도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지.
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창 대학진학을 결정할 즈음, 넌 육지소재에 있는 대학에만 진학하겠다고 엄마와 말다툼까지 했다.
엄마는 육지에 있는 대학은 절대 보낼 수가 없다고 팽팽하게 맞서기도 했다. 너 역시 공부하느라 신경이 곤두섰겠지만 엄마 역시 딸인 너를 홀로 육지에 보내놓고는 단 하루도 마음 졸이며 불안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었겠지?
엄마와 네가 대학문제로 갈등을 하고 있을 때 항상 내 편이었던 네게 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지. 그 당시 뉴스를 보면 사회가 너무 흉악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많이 보도가 되면서 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결국 원서마감을 앞두고 네가 양보를 해서 제주대학교에 원서를 썼고 그 당시 한창 애완견에 대한 붐이 일어날 때여서 그쪽으로 진로를 택했다고 했지.
그리곤 줄곧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님 기대에 부응했었지. 결국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넌 수의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동물병원을 개원하여 지금은 애완견들의 든든한 의사가 되어 있잖아.
기어다니는 벌레 하나도 무서워했던 너였는데, 덩치가 큰 애완견들을 쉽게 치료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단다.
내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데, 한참을 걷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까 덩치가 크고, 하얀색 털이 있고 복스럽게 생긴 돼지 한 마리가 나와 같이 걷고 있었다. ‘귀엽게 생겼구나.’ 하며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발걸음을 빨리 하고 걸으면 빨리 가고, 내가 좀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가는 것이 매우 신기하였다. 그 돼지도 나를 보면서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뒤를 쫒아오는 거였다.
‘설마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어쩌다 가는 방향이 같은 것이겠지?’하고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까지 온 거였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이젠 너도 외삼촌이 되는구나. 축하한다.”하고 말을 하시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새벽에 꾸었던 꿈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게 태몽이었단 말야 ?’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서 웃음만 나오는 거였다.
원래 태몽은 산모들이 많이 꾸지만 그의 가족들도 많이 꾸기도 한다고 들었다. 네가 항상 나를 챙겨주더니 너의 동생의 태몽을 오빠가 꾼 것 같다.
어느새 결혼해서 두 딸의 엄마이자 전문직 일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몇 년 전 네가 결혼하던 날, 주례사가 끝나고 신랑신부 친정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데,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네가 이제는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의 한 일원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마른기침 하는 척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삼켰다.
사진을 찍을 때 보니 나 혼자만 눈물을 흘렸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오빠로서 동생을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아직은 내가 자리를 잡지 못해서 챙겨주지 못한 것이 늘 내 마음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봐! 이 오빠도 사회의 한 수필가로 인정받기 시작하면 그때 오빠의 역할을 제대로 해 줄께 .
사랑한다. 소영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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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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