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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신발 출토...그 시대 누가 신었던 것일까?

윤철수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승인 2014.10.25 13:36:43     

최대 규모 돌방무덤에서 완벽한 상태 금동신발 출토

   
백제 금동신발 출토.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 발굴조사를 한 결과 완벽한 형태의 백제계 '금동신발'을 비롯한 다수의 유물을 확인했다고 25일 전했다.

정촌 고분 발굴조사는 삼국 시대 복암리 일대 마한 세력의 대외관계와 세력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다.

2013년 조사에서는 고분의 규모와 다양한 매장시설(돌방, 돌덧널, 옹관) 9기가 확인됐다.

올해는 고분 안에 만들어진 3기의 돌방무덤에 대한 내부 조사를 시행해 금동신발, 금제 귀걸이, 금제 장신구, 마구, 화살통 장식, 화살촉, 옥, 토기, 석침(石枕), 개배(蓋杯, 뚜껑 접시) 등의 중요 유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동 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백제권의 초기 대형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내부 구조는 돌방 바닥 부분에서 천장 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 들게 축조하고, 출입구에는 석재 문틀을 만들었다.

금동 신발의 크기는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부착돼 있다.

특히 신발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透彫)와 선각(線刻)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했다.

투조는 금속, 목재 따위의 재료를 도려내어서 모양을 나타내는 조각 기법을 말하며, 선각은 선처럼 파서 새긴 그림이나 무늬를 의미한다.

그동안 금동 신발은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흥 안동 고분 등에서 발견됐으나,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수습됐다.

그러나 이번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 신발은 용 모양 장식과 발목 덮개, 연꽃과 도깨비 문양 등의 장식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됐다.

신발 바닥 중앙에 장식된 연꽃 문양은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했고, 중앙에 꽃술을 새겼다. 도깨비 문양은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 형상화된 몸체 등이 연꽃 문양을 중심에 두고 앞뒤로 2개가 묘사돼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금동 신발은 백제와 관련이 깊은 유물로, 백제가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시점과 토착세력과의 관계 등 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백제의 지방 지배와 관련된 사여품(하사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윤철수 headlinejeju@headlineje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