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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편에 선 판결은 역사적 죄업입니다

김경훈 객원필진 kimkh4597@hanmail.net      승인 2011.05.19 08:59:02     

[김경훈 시(詩)로 전하는 세상 이야기] <17> 강정마을 항소 기각을 바라보며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도 지사를 상대로 광주고법 제주지원에 제기했던 절대보전지역변경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 대해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1심의 각하 판결에 이은 것으로, 말이 기각이지 실질적으로 강정 주민들이 패소한 것입니다. 법원의 판결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지만 법도 강자의 편이라는 사실만을 재확인했습니다.

권력의 횡포 앞에 강정 주민들이 최후로 선택한 것이 사법부의 판단인데 사법부는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양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해군과 건설업자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제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물 만난 고기처럼 강행될 것입니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사법부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집단임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육십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말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공정한 판결은 해야 되는데, 가진 자의 시각으로 또는 가진 자 편의 시각으로 내라는 판결은 역사적 죄업의 판례로 남을 것입니다.

다음의 1946년 12월 19일 자의 「독립신보」기사를 보십시오.

 이 땅에 유행되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느 강연회 석상에서 어떤 사람의 강연 중에 "민주 건국을 좀 먹는 이승만을 타도하자!"고 말하자 어떤 청년이 "옳소!"하였다 한다. 경찰 당국은 이 '옳소!'한 청년을 체포하여 그는 8개월의 체형을 받아 방금 복역 중에 있다. '옳소' 한마디에 8개월의 중역은 너무 억울하다고 정의를 사랑하는 이 섬 인민들의 억울하다는 표현이 이 '옳소 8개월'이다. 같은 강연회 석상에서 "매국자 박헌영을 죽이라!" 한 데 대하여 역시 "옳소!"한 사람은 즉시 경찰계에 등용되어 지금은 간부 자리에 앉아있다 한다.

같은 "옳소!"라도, 어떤 이에게는 훈장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전과(前過)가 됩니다. 철저하게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사법부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긴 이때 '친일 청산'이라는 민족의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정의(正義)가 실종되고 사리사욕만 앞세우는 개판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긴 하지만요.

아, 오늘의 이야기는 제주4.3 당시에도 미군기지 설치 문제로 파문이 일었었다는 얘기를 전하려는 것인데요. 먼저 다음의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십시오.

 AP 시사평론가 화이트씨는 조선 제주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다. 조선 제주도는 장차 서부 태평양 지구에 있어서의 '지브롤터'화 할 가능성이 있다. 제주도가 금일과 같은 장거리 폭격기 시기에 있어서 그 군사적 중요성을 띄우고 있음은 이 기지로부터 동양 각 요지에 이르는 거리를 일별하면 능히 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최초 도양(渡洋) 폭격을 한 것도 제주도로부터 결행된 것이다. -한성일보 1946년 10월 22일

 일본이 축출된 후 미군이 들어오자 또다시 이 섬을 군사기지화 한다는 소리에 섬 사람들은 두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그게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 이 사실이 유설(流說)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범의 호령과 같은 파도 소리도 제주 인민의 침략자에 대한 항거의 소리였다. -독립신보 1946년 12월 18일

 기자는 일제 때 만든 군사기지를 돌아보며 현대의 군사기지를 만드는 데는 장구한  시일이 필요치 않음을 생각할 때 문제는 현재에 있지 않고 오직 장래에 있구나 하였다. 만일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자주독립국가를 하루빨리 건설하여 이곳의 자 랑할 풍물을 가지고 '세계의 관광지'를 만들지 않으면 미친 개 눈에는 똥덩이만 보 이는 격으로 호전(好戰)하는 무리의 눈에는 요새로만 보이기 쉬운 까닭이다. -자유신문 1946년 12월 20일

여기에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제주도를 아예 미군의 영구 기지로 상납하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주4.3사건자료집 10권에 나와 있는, 1948년 3월 28일에 있었던 미국의 드래퍼 차관과 이승만 간의 회담을 정리한 다음의 문건을 보십시오.

 이승만은 한국 국민이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해온 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국민의 희망은 미국으로부터의 도움이며 한국은 한국에서 소련을 몰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국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자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말을 들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수립되면 한국인들은 매우 기꺼이 미국이 제주도에 영구적인 기지를 설치하도록 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이신 대통령께선 미국을 위해서라면 제주도 정도야 열 번을 바치고도 남을 분입니다. 그러니. 제주4.3 때는 '제주도, 전남 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拔根塞源하여야 미국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니, 지방 토색 반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쨌거나, 이런 미군기지 설치 문제에 대해 당시 미군정은 이 사실을 부인했으나 들끓는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미군정에서는 미 군용기로 중앙지 기자들을 제주도에 데려와 현지 취재를 하게 합니다. 기자들은 제주도를 둘러보고는 '미군정 당국이 언명한 바와 같이 미군이 기지를 다시 설치한 흔적은 볼 수 없었다'고 기사를 전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저는 미국에게 한 가지 답변을 요구하고자 합니다. 정말로 제주도에 설치하려는 해군기지가 미국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면 다음의 미국 언론인의 기사에 대해 해명을 하기 바랍니다. 또한 육십 몇 년 전처럼 중앙지 기자들을 대동하고서 제주에서 취재를 하고는 '미군기지'가 아니라는 기사를 쓰게끔 하라고 말입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저항은 단순히 제주도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가장 큰 군수업체 록히드의 수입전략에 차질을 준다. 또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복종하는 지정학적 위험 요소도 예방할 수 있다. 이미 록히드는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예정대로 건설될 경우, 현대중공업과 공동으로 인도에 이지스함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앞장서며 중요한 구실을 했던 힐 러리 클린턴 장관은 록히드 마틴 사와 매우 밀착돼 있다. '뉴욕매거진'이 클린턴 장 관을 '록히드 출신의 상원의원'이라고 묘사했을 정도다. -매슈 라이스

끝으로, 오늘의 판결을 지켜보면서 또 한편의 강정에 대한 헌시를 준비했습니다. 이 시를 강정 주민들과 또 많은 현장 활동가들, 그리고 한국과 세계의 양심들에게 바칩니다.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되살리는데 결기를 한데 모아나가길 기대합니다.

 지금은
 비가 더 많아야겠다
 큰내 아끈내 세차게 확 흐르게

 지금은
 바람이 더 거세야겠다
 쇠붙이 쎄멘덩이들 싹 쓸어가게

 지금은
 마음이 더 모여야겠다
 불안 체념 절망 탁 털고 일어서게

 저 너른 바다에는
 원시의 평화가 있고
 그것은 그대로 미래다

 저 깊은 하늘엔
 참된 정의가 있고
 그것은 땅에서 현재다

 그리하여 지금은
 오직 생명만 넘쳐나게
 결기의 피 더 끓어야겠다
  - 졸시, '지금은, 강정에서' 전문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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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객원필진 kimkh45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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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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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 2011-05-19 10:37:17    
고권일 대책위원장을 연행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하며 강정에 힘을 더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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