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국토교통부의 속내가 궁금하다.
입지선정 결과를 포함한 기존 용역내용에 대해 재검증 방침을 밝히면서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두터운 '방어벽'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재검증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요식적 절차를 통해서라도 '절차적 민주성 훼손' 논란 부분만 빨리 털고 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국토부와 반대위의 대립적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국토부는 최근 그동안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에서 강력히 요구해 온 입지선정 타당성에 대한 재조사를 전격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 11월10일 발표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대안 선정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둘러싼 부실의혹을 비롯해 입지선정 타당성 조사결과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이를 재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입지선정 재검증 용역은 단독적으로 시행하기 어렵고, 공항건설계획 절차인 '기본계획 용역'과 함께 동시에 실시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즉, 타당성 재조사와 기본계획 용역 두 개를 하나로 묶은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이달 중 발주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반대주민들과 제주특별자치도가 합의 하에 공동제안한 '선(先) 재조사, 후(後) 기본계획 수립용역'은 불가하다며 거부했다.
국토부는 반대위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재조사 용역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은 재조사 연구자료 및 보완사항을 후속연구에 적기 반영하기 어렵는 것, 다른 하나는 타당성 재조사만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즉, 시간도 없고 예산도 없어 동시에 실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조사와 기본계획의 연구수행 업체를 각각 분리하는 방법으로, 독립성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형식의 차이만 있을 뿐 반대위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타당성 재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근본적으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기본계획 용역은 제2공항 건설이란 국책사업의 정상적 진행을 전제로 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를 '타당성 재조사'와 동시에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재조사를 통해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에 하나 성산읍을 제2공항 입지로 선정한 것이 문제가 있거나 다른 후보지역에 비해 타당성이 낮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성산읍 제2공항 건설계획은 원천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기본계획 용역이 이달 중 예정대로 발주된다면 국민의 세금만 낭비한 '헛일'이 된다는 것 또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왜 '동시 실시'를 고집하는 것일까.
이는 타당성 재조사를 한낱 '요식적 절차'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부가 '동시 실시'라는 억지 설정의 무리수를 둔 것은 제2공항 국책사업을 둘러싼 '절차적 민주성 훼손'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 차원이 큰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10일 발표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타당성 용역' 최종보고서의 공항입지 선정결과는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밀실주의의 산물이었다.
국토부는 지난주 관련 브리핑에서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부동산 투기, 지역 간 찬반 논란 우려로 입지 후보지를 공개하는 것은 곤란해 제2공항 입지 후보지 검토를 포함한 최적 입지대안 선정작업은 철저한 보안속에서 이뤄졌다고 밝히면서도 마치 두번의 도민 설명회는 했던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언어도단이다.
당시 국토부가 설명회를 했던 것은 3개 대안, 즉 '기존 공항 확충', '제2공항 건설', '신공항 건설(기존공항 폐쇄)'을 대상으로 한 대안선정 기준과 관련한 것이었다.
원희룡 도정 역시 도민 공론화에 부친 것은 이 3개 대안 중 최적의 대안을 묻는 것이었다. 용역 기간 중 단 한번도 이 용역을 통해 구체적 공항 후보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도 없었다.
용역의 명칭 또한 '공항 인프라 확충방안'이었기에 용역 결과는 최적 대안에 대한 발표 수준으로 인식되었다. 공항 후보지 선정문제는 이 용역에서 대안이 설정되면 후속 용역이 진행되는 가운데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 예상은 빗나갔다. 국토보는 용역 최종보고서 공개 시점에 맞춰 기습적으로 성산읍을 제2공항 후보지로 확정 발표했다. 제주도민을 완전히 기만한 국가권력의 횡포에 다름 없었다.
지금의 공항 갈등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이 절차적 민주성 문제에 있었다.
후보지로 올라있던 지역 주민들로부터 입지 결정 가능성을 사전에 예고하고, 주민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비교평가 데이터를 제시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더라면 결정시기는 조금 늦어졌을지는 몰라도 상황이 지금처럼 복잡하고 심각하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국토부가 '밀실'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제시했던 부동산 투기 문제와 찬반으로 인한 갈등 문제 두가지 중 단 한가지도 득을 본 것이 없다. '깜짝 발표' 후에 성산읍 인근 지역 땅값은 급등했고, 제주도 전체적으로 부동산 시장은 교란됐다. 주민갈등 문제 또한 더욱 악화됐다.
한마디로 '깜짝 발표'는 우둔한 당국자의 실책이었다. 공항건설이 아무리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한 후 해당지역 주민들을 몰아내려는 것은 반민주적인 국가폭력에 다름없다.
제2공항 계획에 이러한 심각한 절차적 정당성 훼손 문제가 있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절차적 투명성 확보'를 약속했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토부가 이번에 '타당성 재조사'를 수용한 것도 문 대통령의 공약을 감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조사는 하겠다고 하면서, '재검증 조사결과' 판단 주체를 전문가가 아닌 '제주도민 참여 검토위원회'에 맡기자는 성산읍반대위의 수정 제안에 대해 난색을 표하면서 회피전략으로 나서는 모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성산읍반대위는 그동안 제2공항 건설문제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며 장기간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이번 국토부의 '동시 실시' 제안을 수용한 것은 '중대 결심'의 양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선 재조사'를 요구해 온 반대위는 국토부의 제안을 수용하되, 대신 재검증 결과에 대한 판단은 용역에 참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제주도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검토위원회'에서 하도록 하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검토위원회는 국토부와 성산읍 5대 5 추천 제주도민 500명으로 구성하고, 설명회, 토론회 등을 통해 타당성 재조사 용역결과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면 국토부와 성산읍대책위는 그 결과를 따르자는 내용이다.
검토위 주관의 공론화 절차를 통해 입지선정 타당성에 대한 결론을 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 관계자는 반대위의 제안 내용에 대해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면서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자신들이 의뢰한 재조사 용역 연구수행 업체에서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말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셀프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국토부가 현재 나타난 갈등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하며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극한 갈등상황으로 치달아온 성산 제2공항 문제는 어쩌면 이번이 꼬인 실타래를 풀 마지막 기회일런지 모른다. 최초 '주민 동의' 절차가 생략되어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현실적으로 주민 동의는 받기 어렵다 하더라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처럼 제2공항에도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주민들을 설득할 묘안이 달리 없다면, 재조사 결과에 따른 판단은 '검토위원회'에 맡겨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짜고짜 '나쁜 선례' 운운할 일이 아니다. 강정마을 사태 때 처럼 국가공권력을 투입해 주민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공사를 강행할 생각이 아니라면, 반대위 제안의 전향적 검토 필요성은 결코 적지 않다.
그렇지 않고 공항건설 강행을 위한 짜여진 각본처럼, 요식적 절차로 재검증 실시를 고집하다가는 더 큰 주민갈등, 상황의 악화를 초래할 뿐이다. '셀프 조사'는 문 대통령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 공약을 허투로 만들어 세간의 웃음을 사게 할 수도 있다. <헤드라인제주>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