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 갈등문제가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가 파행적으로 종료된 상태에서, 서둘러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강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기본계획 수립 용역은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에서 맡아 6월까지 진행된다. 이후 2020년 실시설계용역을 진행하고, 2021년 하반기 토지보상 등을 거쳐 건설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그동안 진행된 과정은 논쟁 사항에 대한 조정차원이었다면, 기본계획 수립은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의 본격적 착수를 의미한다.
공사에 들어가기 위한 행정적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는 국토부의 강행방침에 강력 반발하며, 전면적 '저항'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또다시 정면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기해년(己亥年) 벽두의 이 파국사태는 전적으로 정부와 원희룡 도정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 귀책사유를 따져보자.
파국을 부른 이유가 정부의 절차적 민주성 결여의 문제가 크다. 여기에 현 도정의 '무능 행정'이 더해졌다.
첫째, 검토위원회의 파행적 종료는 국토부가 검토위 구성 및 운영을 한낱 명분 축적용 '요식행위'였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2017년 12월 국토부가 성산읍반대위에서 요구해 온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그 속내가 미덥지 못했다.
2015년 11월 발표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의 '부실' 의혹이 커지자 재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하면서도, '기본계획 수립 용역'과 동시에 실시한다는 조건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재검증 용역을 통해 '부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기존 용역 결과는 원인 무효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국토부는 반대주민들의 '선(先) 재조사, 후(後) 기본계획 수립' 요구를 거부했다.
시간도 없고, 예산도 없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이해못할 변명만 늘어놓았다. 재조사를 한낱 '요식적 절차'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재조사 용역이 시작되자 마자 국토부의 황당한 액션이 나타났다.
부실 의혹이 제기된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행했던 업체를 재검증 용역 업체로 선정해 '셀프 검증'을 맡긴 것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지난해 7월 재공모를 통해 용역업체를 교체했고, 재조사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찬성과 반대측에서 추천한 위원 동수(同數)로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당초 합의한 규정을 보면, 검토위 운영기간은 3개월로 하되, 필요시 최대 2개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경과됨과 동시에 검토위의 활동기간 연장을 거부하는 강수를 뒀다.
검토위 차원에서 결론에 대한 합의점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반대측 추천위원들은 '중대한 결함'이 확인됐다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강제 종료시켜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토위 파해종료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곧바로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애시당초 '재조사'는 요식적 절차에 불과했고, '기본계획 수립'이 주목적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 검토위원회 종료나 재검증 용역 마무리에 대한 공식적 발표도 없이 기본계획 수립을 서둘러 시작한 것도, 절차적으로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존 '부실 용역' 의혹 규명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재검증 용역을 실시했다면, 그 결과는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사안이다.
또한 검토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됐다면 왜 종료됐는지, 검토위원회에서 나온 결론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재검증 용역 결과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공식적 발표 한번 없었고, 검토위원회 활동 결과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착수된 사실을 언론에 살짝 흘려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절차적 논란을 떠나, 제주도민을 우습게 보는 기만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최소 재검증의 용역의 결과와 검토위 파행관련 내용을 가감없이 공개했어야 했다. 기본계획 수립은 그 절차가 완료된 후에 해야 할 일이다. 일의 앞뒤가 완전히 바뀌었다.
국토부에서 2개의 용역 '동시 실시'를 고집할 때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화된 것이다.
셋째, 이러한 절차적 문제로 인해 지난 6개월의 발품은 모두 헛수고가 되었다는 점이다.
검토위원회는 결론이나 권고안 마련은 커녕, 종료한다는 사실 자체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한채 해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면서 찬성측 추천위원의 '큰 하자 없음', 반대측 추천위원의 '중대한 결함 확인'이라는 양분된 결과의 논쟁만 확대재생산 식으로 커지게 됐다.
검토위가 해체되면서 이제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지 공식적으로 들어볼 토론의 장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재검증 용역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검토위원들 조차 양분되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는데, 용역진의 재검증 결과 또한 그대로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토부 관계자는 "재검증 용역 결과 백지화 할 만큼 큰 하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이 났고, 검토위원회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모두 설명이 됐다"고 말해 의아스럽게 했다.
용역 결과 큰 하자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의문들이 모두 해소됐다는 주장이다. 검토위원 중 절반이 "후보지 선정 평가과정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확인됐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상황에서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이 재검증 용역결과는 아직까지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이번 제2공항 갈등 문제의 악화일로는 근본적으로 절차적 문제에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단순히 제2공항 건설 필요성 내지 당위성에 대한 옳고 그름의 논쟁이 아닌 것이다.
절차적 문제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 제2공항 후보지 결정발표 과정부터 문제 투성이였다.
2015년 11월10일 발표된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타당성 용역'의 공항입지 선정결과는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밀실주의의 산물이었다.
당시 용역은 공항건설 대안을 비교검토하고, 여러 후보지에 대한 평가결과가 공개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결론은 성산읍을 단일 후보지로 결정해 발표했다.
주민들도 모르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가 '깜짝쇼'가 벌어진 것이다. 절차적 민주성은 철저히 훼손됐다. 이것이 제2공항 갈등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전후 과정을 보면, 국토부와 더불어 제주도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원희룡 도정은 이번 검토위 파행 등과 관련해 국토부와 사전에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맞장구'를 쳐대고 있다.
원 지사는 지난 연말 언론과의 신년대담에서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게 아니라는 검토위원회의 결론이 나왔다"고 발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뒤늦게 '거짓말' 논란이 빚어지자 '예측발언'이었다고 말을 슬쩍 바꿨다.
이어 기해년(己亥年) 신년사에서는 "제2공항은 도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문제가 매듭되어, 새해에는 국책사업으로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도민들이 바라는 방향'이란 말도 결국은 '국책사업으로 차질없는진행', 즉 '제2공항 반드시 건설' 천명인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확증편향(確證偏向)'에 빠져 있는 듯, 국토부의 주장과 똑같은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 지사의 변명은 늘 이런식이었다. 2015년 11월 최초 후보지 결정 '깜짝 발표' 때도 이랬다.
당시 발표가 있기 불과 며칠 전 단수 후보지로 발표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도의회가 공개적으로 강력히 만류했다. 그러나 원 도정은 국토부와 함께 후보지 발표를 강행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부동산 투기 과열이 우려된다는 것 등을 제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다.
부동산 투기가 과열된다면 토지거래허가제 등의 방법으로 사전 제어가 충분히 가능했다.
도민들 아무도 모르게 '단일 후보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후보지로 올라있던 4곳의 지역 주민들에게 입지 결정 가능성을 사전에 예고하고,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비교평가 데이터를 제시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문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복잡하게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자 중대한 판단착오이다. '무능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국토부와 더불어 제주도정 역시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불리한 지적이 나올때마다 '국책사업이어서', '검토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해서' 등의 변명만 하고 있다. 책임회피이자 비겁함에 다름 없다.
숙의 민주주의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중국자본의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개설허가를 내주는 역주행으로 민선 7기 출범 5개월만에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제2공항 문제에서도 '불통'의 단면을 드러냈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주민들을 분열시키며 마을공동체를 송두리째 붕괴시킨 강정 제주해군기지 사태의 전철(前轍)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움이 크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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