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등 상고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물로 토기의 제작과 활용이다. 먹거리를 채취하고 저장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토기를 만들어 활용하였을 것이다. 토기는 인간이 흙, 물, 불, 공기 등 여러 원료를 섞어 만들어낸 인류역사 최초의 합성물이다. 흙은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이며 물과 섞어 반죽하여 여러 가지 모양을 빚어낼 수 있고, 마른 뒤에도 그 형태를 유지하며 불에 구우면 단단해진다.
토기는 신석기 시대 이후 시대의 대표적 산물로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낸 용기이다. 토기는 과거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 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나무 용기 등을 토기 대신 사용하였다. 그러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든 후 말려서 쓰다가,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토기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제주 토기문화의 변화와 흐름 ⓒ헤드라인제주 |
현재까지 제주도 토기의 시기별 변화 단계는 크게 5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단계는 유문토기(신석기 시대 토기) 단계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기로 알려진 제주도산 고산리식 토기(원시무문양 토기, BC10,000∼8,000)에서 출발한 유문 토기 단계는 그 후 고산 덧무늬 토기(융기문 토기, BC8,000∼6,000)로, 다시 신석기 후기에는 북촌리식 토기(BC3,000∼1,000)로 이어진다. 2단계는 구멍무늬 토기(공렬토기)로 대표되는 상모리식 토기(BC600∼300)가 사용되는 무문 토기 시대(청동기 시대), 3단계는 구멍무늬 토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육지산 점토대 토기가 공반하는 탐라 형성기(초기 철기 시대)의 삼양동식 토기(BC200∼AD200) 단계이다. 4단계는 곽지 패총에서 다량 출토된 외반 구연 항아리로 대표되는 탐라 전기의 토착화된 곽지리식 토기 단계(AD200∼500)이며, 5단계는 곽지리식 토기에서 전문화된 직공 체제로 이어지는 탐라 후기의 제품화된 고내리식 토기 단계(AD500∼900)이다. 이때 육지산 회청색 경질 토기(회색 도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반도의 발달된 도기 제작 기술이 고내리식 토기에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상고시대 이후 제주 토기문화에 따른 단계별로 살펴보며 시대별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987년 발굴된 고산리식 토기는 우리나라에서 고산리 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적인 토기이기 때문에 고산리식 토기(원시 무문 토기)로 불려진다. 이 토기는 한반도에서 기존에 출토된 유문 토기와 구별되며 그릇 표면에 식물체를 보강제로 이용한 원시형 토기이다.
▲ 고산리식 토기 ⓒ헤드라인제주 |
한반도의 빗살무늬 토기보다 2천년 이상 앞선 것이며 수만점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나 화살촉, 창끝 등 사냥, 수렵용 유물이며 농경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산 덧무늬토기는 고산리 해안 단구에서 수습되었는데, 현재까지 1점만 확인되었다. 상부 직경이 50㎝에 이를 정도로 넓은 아가리가 특징이며, 두께는 0.8㎝이고, 바닥은 평저이다. 토기의 재료는 자잘한 모래가 섞인 점토질로 적갈색 내지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농경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 고산 덧무늬토기 ⓒ헤드라인제주 |
▲ 북촌리식 토기. ⓒ헤드라인제주 |
상모리식 토기는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무문 토기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해안가에 위치한 조개무지 유적에서 1988년 발굴되었는데 토기와 함께 도끼, 대팻날, 화살촉, 돌팔지 등 출토되어 바다를 중심으로 주로 어로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상모리식 토기 ⓒ헤드라인제주 |
삼양동과 도련동 일대에 넓게 형성된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삼화지구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삼양동식 토기는 제주시 삼양동 유적에서 집중 출토되어 명명된 토기 형식이다.
간 돌칼, 화살촉 등 수렵도구와 함께 불에 탄 콩, 항이리 등이 발굴되어 마을 형성, 농경 활동의 흔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 삼양동식 토기 ⓒ헤드라인제주 |
▲ 고내리식 토기 ⓒ헤드라인제주 |
토기의 기종은 매우 단순하여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규격화·제품화된 성격이 강하여 전문적인 생산 체제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내리 유적에서 토기와 함께 불에 탄 쌀, 보리, 콩이 발견되었다.
<고내리 유적에서 발굴 된 불에 탄 쌀, 보리, 콩>
고내리식 토기 이후 우리나라 마지막 무문 토기 소성으로 만들어진 고내리식 토기는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도자기와 질그릇 용기의 유입과 함께 서서히 그 막을 내린다.
※ 참고자료: 강용희(2018), <제주토박이의 섬·바람·오름>; 국립제주박물관)2017 <국립제주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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