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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과 가로등

이충훈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승인 2019.10.23 08:48:00     

[기고] 이충훈 / 안덕면 부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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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훈 / 안덕면 부면장. ⓒ헤드라인제주
시민과의 최접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작은 소리이지만 결코 허투루 들어서는 아니될 민원을 가끔 접하게 된다. 최근 농촌지역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생활불편 중 하나가 가로등 관련 내용이다. 가로등 민원 하면 당연히 가로등을 신설해 달라고 하거나 고장난 가로등을 수리해 달라고 하는 경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가로등 관련 민원이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얼마 전 콩 농사를 짓는 분이 면사무소 농업 담당 공무원을 찾아왔다. 그 분은 지금 콩 꼬투리들이 한창 여물어가야 할 시기인데 도로변을 따라 발아된 콩들은 여물기는커녕 아예 꼬투리를 맺지 못하고 있다며 가로등을 켜지 말아달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밤새 가로등을 환하게 켜놓으니 콩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 얼핏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바는 있지만 도대체 가로등이 콩 농사를 망치게 할 정도라니 쉽게 와닿지 않아 슬그머니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가로등이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에게 수면장애나 불면증이 있으면 정신적, 신체적 질환을 앓게 되듯이 식물도 종류에 따라 빛의 성질과 강도, 조명시간과 방향, 명암의 주기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콩과 벼는 빛에 특히 민감한데 콩의 경우는 5.5룩스, 벼의 경우는 10룩스 이상의 야간 불빛이 개화기 또는 성숙기에 지속되면 개화가 지연되고 약 43%까지 열매가 감량된다고 한다. 가로등의 경우 조도가 기본적으로 30룩스를 넘는다고 하니 농사를 망친다고 한 그 분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그밖에도 가로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농작물에는 참깨, 들깨, 팥 등이 있고 긴밤을 보내며 성숙해지는 이들 식물은 단일식물로 분류한다. 반면에 밤이 짧아지는 시기에 열매를 맺고 성숙해지는 보리, 무, 시금치 등의 장일식물도 있는데 이들도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밤이 너무 짧아지면 생육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져 충분한 생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콩꼬투리와 벼이삭의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란 새내기 공무원들이 허다하다. 그들은 이와 같은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응대하고 처리할까? 다행히 연륜이 있는 담당 공무원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가로등 담당자에게 알려 격등과 점등시간 조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민선7기 도정비전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 이다.

사람의 안전과 편리를 위하여 마련한 행정 시설물들이 우리 제주의 자연과 상생·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우리 공직자들이 충분히 살펴야 할 일이다.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겸손한 경청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충훈 / 안덕면 부면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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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훈 headlinejeju@headlineje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