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배야 ~ "
오만 인상을 쓰시며 모 어르신이 쭈구리고 앉아계신다. “탁배기 한잔만 먹으면 배가 안 아플껀디... 금옥아! 탁배기 한잔만 사오라”
간암말기 판정을 받아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부탁이다. 입소하기 전 집에서 술을 즐겨 드셨기에 모든 병에 약은 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전보다 더 심한 통증을 호소하시길래 곰곰이 생각을 하다 ‘2%’ 음료수를 소주라고 하여 사다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00리터 한 병을 주무시기 전에 마셨는데 그 후 일주일이 지나고는 하루에 3병씩 마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젠 소주를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막걸리를 원하셨다. 고민을 하다 이번에는 아침햇살음료수를 막걸리라고 하여 1.5미터를 사다드리기 시작했다. 그 음료수를 건내자 그 자리에서 컵에 따르시곤 한숨에 쉬지 않고 벌컥벌컥 ‘원 샷’을 하신다. 그리곤 활짝 웃으시며 ‘캬~~을’ 하시며 “이제 살아지켜... 역시 배 아플 땐 탁배기가 약이주”하시며 말씀하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지금은 어르신이 치매를 앓고 계셔서 고통을 덜 느끼신다고는 하지만 아마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이 아프실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다.
모 어르신이 큰 보따리와 가방을 들고 나를 찾는다. “금옥아! 이거 가지고 이시라잉 밥 먹엉 제주시 갔다오게...”
치매를 앓고 있는 또 다른 어르신이다.
이 어르신은 항상 보따리를 싸고 집에 가시겠다고 하신다. 식사를 마치신 어르신은 다시 나를 찾아 사무실로 오셨다. 어르신과 함께 건물 한 바퀴를 돈다. “제주시까지 택시 얼마니?”매일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오만원이우다” 역시 매일 똑 같은 내 대답이다.
갑자기 어르신은 바닥에 주저앉으시더니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하신다. 그리곤 양말속에 숨겨 놓았던 꼬깃꼬깃 구겨진 이만원을 건내며 “나 이거 밖에 어시난 니가 돈 더 보태주라”하시며 다시 양말과 신발을 신으신다. 나는 어르신을 달래고는 다시금 요양원 안으로 들어간다.
‘띠리링’ 사무를 보고 있는데 3층 생활관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하고 대답하자, 생활지도원 선생님 왈 “예~ 거기 000어르신 댁이지예~, 어르신이 통화하고 싶다고 하니 받아보세요” 너무나 자연스런 연기다.
이제부터 나는 모 어르신 딸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은 욕부터 시작하여 욕으로 전화를 마무리 하신다. 그리곤 전화를 끊으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우리 선생님들은 어르신들의 며느리, 딸, 아들 역을 하곤 한다. 늘 반복적인 일상이라 모두들 수준급 연기자다.
어떤 분들은 이 행동에 대해 이해를 못 하실 것이다. ‘그냥 보호자와 연결 시켜주면 되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호자를 생각하는 부분도 요양원의 또 다른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어르신을 떠올리고 마음이 다시 급해진다. 배 아플 땐 탁배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어르신이 날 눈이빠지도록 기다리고 계실테니까 ...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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