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노트에 이것저것 낙서를 하다가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와 친구들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했다. 모두가 각자 자기 일에 열심히 하느라 한 친구와 겨우 약속을 하고 술을 마셨다.
그것도 잠시. 한창 분위기 무르익을 무렵,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마누라가 빨리오란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에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특히 작년 2007년 정해년은 ‘쌍춘년’ 이라고 해서 유독 결혼하는 커플이 많았다.
내 나이 서른여섯 적지 않은 나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른여섯이면 노총각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은 결혼적령기가 높아지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예전에는 설날이나 추석 등 친척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일 때면 어른들이 혼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결혼해야지?”라고 하는 덕담을 제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 된다.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언제면 저런 소리를 들어보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몇 년 전부터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친척행사에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사촌형님이나 누나들이 시집간다거나 장가가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친척집 일이라 안 갈 수도 없고, 참석하면 또 한 소리 듣곤 한다. 뭐 이제야 귀에 멍이 들 정도니까 나야 그냥 웃고 넘기지만, 시집 장가가는 친척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시고 계신 부모님을 보면 미안하기 그지없다. 마음먹었다고 당장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이제는 내 친구들도 다들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참 행복하게 보여 장가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더 생겨난다. ‘나라고 왜 결혼할 마음이 없겠는가?
몇 년 전, 어머님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한 장애여성을 만났다.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상대방 역시 나에 대해 많은 애정과 함께 급기야 결혼 이야기까지 오가게 되었고, 내 부모님과 상대방 부모님 역시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모두가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잠시나마 좋았던 인연을 깨지게 한 건 내 부모님과 나를 속이고 결혼하려던 그쪽이었다. 평생 반려자가 될 뻔했던 그녀는 장애 외에 또 다른 병을 갖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고 괴로웠다. 하늘을 원망했고, 내 자신을 포함한 나의 모든 게 싫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고 있기엔 내가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바로 잡았다.
내 주위에 장애인들을 보면 필리핀이나 베트남, 중국 연변 등지의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을 많이 하고 있다. 한 번은 나랑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 나이 40세가 넘어서 결혼한다기에 갔더니 22살인 필리핀 여성과 결혼을 한단다. 너무 행복해 보여 부러웠다.
‘마흔 네 살에 스물 둘. 그야말로 더블이다. 완전 도둑이다.’ 생각하면서 축하의 박수를 힘껏 쳐 주었다. 행복하라고...
‘나도 저런 여자 정도면 국제결혼도 할 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석달 후 날아온 비보.
그렇게 순진하고 얌전하던 그 필리핀 여성이 그 형님이 일 나간 사이에 모든 짐을 정리하고 사라졌다는 예기다. 그 형님을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뭐라 위로의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래서 국제결혼은 위험하단 말이 나오는 구나’ 싶었다. 하지만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도 많이 봤다. 나는 아직 내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한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런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 가다 보면 내 꿈이 이뤄질 것이고, 그때 내가 꿈꾸던 여인을 만나게 되겠지? 그 꿈을 향하여 가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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