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강정평화대행진, 290km에 새긴 희망의 발자국

고용희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승인 2012.08.05 11:23:47     

5박6일 대장정..."제주해군기지 나는 반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희망...'강정 평화' 한마음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염원하며 시작된 ‘강정평화대행진’이 지난달 30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진행돼 4일 마침표를 찍었다. 

걸음마다 평화를 싣고 걸어온 이들의 길은 꼬박 290km. 누적 7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발바닥에 훈장처럼 자리 잡은 물집을 실로 꿰매며, 온몸으로 평화를 외쳤다. 마지막 날인 4일, 감격으로 차오른 서진 행진단의 길을 함께 걸었다.  

4일 오전 8시 30분경 외도초등학교에서 출발한 서진 행진단은 이호테우해변을 거쳐 제주시 노형로터리로 진입한 후, 자치경찰단 사거리(옛 제주세무서 사거리)에서 동진팀과 만나 탑동으로 향하며 행진을 마쳤다.

   
강정평화대행진 서진 참가자들이 4일 제주시내를 행진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엄마 손 잡고 걷는 어린아이부터 장애인, 종교인, 정치인, 외국인들까지.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벌겋게 달아오른 종아리와 부르튼 발을 딛고 마지막 행진을 하는 이들의 눈동자는 감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몇 모금의 물로도 채워지지 않던 타는 목마름이 마지막 날인 4일이 돼서야 ‘울컥’ 차오른 것이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도 손을 잡았다. 같은 간절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불볕더위에 짜증이 날법도 하지만, 사탕 하나라도 나눠먹으며 서로를 챙기기에 바빴다.
 
사람들은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부르튼 발과 벌겋게 익은 종아리가 고된 일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강정평화대행진 서진 참가자들이 제주도청에서 점식식사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일 강정평화대행진 서진 참가자들이 잠시 쉬는시간을 맞아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오히려 쉬는 시간만 되면 힘을 북돋기 위한 춤판이 벌어졌다. 장구와 꽹과리 장단에 맞춰 앉아서 쉬던 사람들도 함성을 보내고, 흥이 난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춤을 췄다. 길을 걸을 때에도 사람들은 함께 노래를 불렀다.
 
평화를 싣고 이어온 이들의 길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시민들도 많았다. 건물 안에서 창문을 열고 ‘화이팅’이라는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 시민도 있었다.
 
서진팀 자전거 선발대가 약국에 들렀다가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박카스’ 2박스를 선물 받았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지난 3일 트위터 상에 회자됐다.
 

   
강정평화대행진 서진 참가자들이 4일 제주도청을 지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광주에서 온 강정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이 서진 참가행렬과 합류하며 '해군기지 나는 반대다'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일 강정평화대행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해군기지 나는 반대다'라는 플랜카드를 몸에 두르고 해맑은 표정으로 길을 걷고 있다.<헤드라인제주>

 
그동안 목안에 묵혀놓았던 ‘간절함’은 길을 걷는 내내 풀어 놓을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됐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며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전국 각지에서 SNS와 언론을 통해 강정마을을 접한 사람들은 마을주민과 강정마을 활동가들에게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먹먹해진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강정마을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감정들은 길 위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강정마을 구럼비가 발파되던 날 탄식하며 가슴에 묻어 뒀던 ‘슬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강정의 소식을 접하며 함께 할 수 없어 느꼈던 ‘죄스러움’. 비민주적인 해군기지 건설 추진 과정을 보며 느꼈던 ‘분노’.
 
공통적으로 ‘아픔’과 ‘간절함’으로 모아지는 이러한 감정들은, 서로 손을 잡고 걷는 길에서 행복과 희망으로 바뀌었다.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빠짐없이 행진에 참여한 배현덕(57. 경기도 성남)씨는 지인에게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강정을 직접 찾아갔다가, 남몰래 가슴앓이를 했었다고 한다.
 
배씨는 “강정마을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고 환경이 무참히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었다”며 “행진을 하며 뙤약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때문에 숨이 막혔지만, 같은 마음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은영(40. 경기도 안산)씨는 SNS를 통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분노를 느꼈었다. 이씨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는 행진 길을 직접 걸으며 희망을 안게 됐다.
 
이씨는 “독단적인 방식이 아닌 소통을 바탕으로 해군기지 문제가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길을 걸었다”며 “발목에 파스를 붙일 정도로 쉬운 길이 아니었지만, 길을 걸으며 해군기지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제주 자치경찰대 사거리(옛 제주세무서 사거리)로 진입한 서진 참가자들을 환영하고 있는 동진 참가자들. <헤드라인제주>

   
제주 자치경찰대 사거리(옛 제주세무서 사거리)로 진입한 서진 참가자들을 동진 참가자들과 만나 박수를 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마지막날 행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오후 4시께, 동과 서진으로 나눠 첫날 강정마을에서 출발했던 이들이 자치경찰단 사거리(옛 제주세무서 사거리)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먼저 도착해 있던 동진팀은 서진팀이 들어서자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외치며 환호했다. 해안을 따라 동서진으로 걸으며 한 목소리로 냈던 ‘강정평화’의 외침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동서진팀은 제주시청을 지나 탑동광장까지 행진을 벌이고, ‘제13차 해군기지 백지화를 촉구하는 전국 집중행동의 날’ 행사를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290km로 이어진 평화의 길은 외로운 싸움을 해온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소중한 힘이 됐다. 
 
강정마을 주민 윤상효(76)씨는 “하루하루 사람들이 차츰 불어나는 것을 보며 희망을 느꼈다”며 “행진을 하며 다리가 붓고 힘들었지만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또 응원을 보내주는 제주도민들을 만나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고권일 제주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도 “이번 행진은 많은 국민들이 해군기지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이제는 더 이상 소통 없이 일방적인 수순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과 함께하고 있노라고 온몸으로 외치며 길을 걸은 사람들. 길거리에서 응원을 보내주던 제주도민들. 이들의 마음이 한자리에 모여 290km에 이르는 발자국을 찍어냈다. 루쉰이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희망을 논했던 것처럼, 이들의 발자국이 희망을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헤드라인제주>
 
   
4일 제주벤처마루 앞에서 동서진 행진팀이 만나 탑동으로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4일 동서진 행진팀이 만나 탑동으로 행진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고용희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고용희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