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5기 핵심공약이었던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골자로 한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은 사실상 무산됐다.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시장을 직접 선출토록 하겠다던 약속도 실현이 불가능하게 됐다.
지난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우 지사는 "시장을 직접 도민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시장 직선제는 시행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이 발언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장 직선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오는 6월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지만,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게 됐다. 3년째 이어져 온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결국 무위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쯤되면 도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수순이 이뤄질 법도 하다.
이 정도 기대는 너무 큰 것일까. 지난 도정질문에서는 이해를 구하기는 커녕 볼썽 사나운 '네 탓' 공방이 벌어졌다.
우 지사는 "도의회가 제시한 '부대의견' 때문"이라며 행정체제 개편논의가 난항에 빠진 귀책사유를 도의회로 확실히 돌렸다. 반면 '자기 함정'에 완패를 당한 듯한 도의회도 오히려 "왜 그게 '부대의견' 때문이냐"며 맞대응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이 공방은 제주도나 도의회 모두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내년 선거국면에서 이 문제가 책임논란으로 돌출될 가능성을 의식한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시장 직선제'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데 대한 책임론은 분명 강하게 제기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이 일련의 상황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지난 도정질문에서는 행정체제 개편이 무산된데 따른 책임공방이 연일 벌어졌다. <헤드라인제주> |
◇ 행정체제 개편 사실상 무산, 왜 이렇게 됐나?
논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민선 5기 도정 출범 후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해 제주도행정체제 개편위원회가 출범해 운영됐다.
개편위는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연구용역과 여론조사, 전문가 논의 등을 통해 최초 5개 안을 마련했고, 여러단계의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시장직선.의회 미구성안(행정시장 직선제) △시장직선.의회 구성안(기초자치단체 부활) 등 2개안으로 압축했다.
이 2개안 중 어느 안이 선택되더라도 최소 '시장 직선제'는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2개안을 갖고 도민사회 논의에 부쳐 늦어도 지난해까지는 최종 대안이 결정됐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최종안 선정은 계속해서 미뤄졌다.
그러다가 올해 2월6일 행정체제개편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종전 2개안에서 1개안을 추가해 3개안으로 재수정하고, 이 3개안 중 최종안을 선정키로 느닷없는 결정을 내렸다.
추가된 1개안은 다름아닌 '행정시장 권한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안'.
엄밀히 말하면 추가된 이 안은 행정체제의 개편 모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체제 개편을 당장에 할 것이냐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이냐 하는 논의의 우선순위에 관한 내용이다.
즉, 압축대안의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행정체제 개편 용역결과의 편향성이 제기될 때마다 '학자적 양식을 갖고'라는 말로 도민들을 설득해왔던 개편위는 정작 이 '끼워넣기 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의회가 개편위의 운영기간 연장 조례안을 통과시키면서 이 안을 추가시킬 것을 부대의견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끼워넣었다라는 변명이 전부다.
사실 부대의견으로 이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부대의견 첫번째 사항으로 "현재의 행정체제 개편 2개 대안 중 특정안을 결정짓지 말고 '행정시 권한 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까지 포함해 도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부대의견의 문맥을 보면 종전 2개 대안에서 추가안을 넣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소위 전문가로 불리우는 '선수'들이 참여한 개편위가 부대의견에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그대로 대안으로 끼워넣기 한 것은 매우 의아스러운 부분이다.
마치, 안그래도 '꽁무니'를 내리고 빠져나갈 명분이 필요했는데, 기다렸다는듯이 달려든 모습이다.
정말 그랬다면 개편위나 제주도정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핑계거리, 결정적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 '비겁한 변명' 일관...왜 책임을 솔직하게 고백 못하나?
지금의 상황을 의회로 책임을 돌린 우근민 지사는 의회의 반박이 계속되자 "의회가 (부대의견을) 취소하면 (시장 직선제를) 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설령 도의회가 부대의견 취소 수순을 밟는다 하더라도 시간적 촉박함을 감안할 때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의 실시는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 지사는 '부대의견 때문'이라는 점만 시종 강조했을 뿐, 도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도의회도 마찬가지이다. 2명의 의원이 이와 관련해 도정질문을 벌였으나, 표면적인 흐름상 스스로의 덫에 '완패'를 당하는 것같은 모습에 화가 났던지 박희수 의장이 다음날 재반론하고 나섰다.
당시 부대의견을 마련한 해당 상임위원장(행정자치위원장)으로부터 확인한 결과임을 들어, "당시 부대조건 속에는 논의를 중단하라는 조건은 없었다"는 말로 반박을 가했다.
상임위 의견은 '논의중단이 아니라 특별자치도의 취지를 잘 살려서 추진하라는 것이었다'는 것이 박 의장의 설명이다. 제주도정의 '추진의지'만 있었다면 부대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추진할 수도 있었지 않느냐는 항변도 이어졌다.
그러나 도의회 역시 '부대의견'에 대한 솔직함은 부족했다. 논의중단이란 말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엉뚱한 대안 끼워넣기'를 주문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또 끼워넣은 대안의 내용은 한마디로 논의를 유보하자는 것이다.
왜 해당 상임위에서 그런 '추가 대안' 끼워넣기를 주문했는지 그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논의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랬다면 끼워넣기 대안의 비겁함이 아니라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논의중단'을 요구했어야 했다.
반대로 끼워넣은 안이 정말 행정체제 개편의 모델적 대안으로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우둔한 의회'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대안같지 않은 대안을 부대의견으로 주문받았다고 해서 '빠져나갈 명분'으로 삼은 도정이나, 그 부대의견을 제시한 도의회 모두 비겁하기 짝이 없다.
지난 3년간 시장 직선제 내지 자치권 부활을 기대하며 논의를 해온 백성들만 '바보'가 되어 버린 모양새다. 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책임을 고백하지 못할까.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